내 군대이야기 4: 이등병 생활 본인과 세상 이야기



=== 6. 이등병 생활 II: 내무생활 ===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는 선임들이 제일 선호하는 후임은 아니었을 듯 싶습니다. 우선 눈에 보일 정도로 나이 때문에 불편해하는 선임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이건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깍듯하게 대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원래 사회에서도 나이와 관계없이 존대쓰는 것은 익숙해서 그 부분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만, 일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나이 많은 신병들은 종종 갈등을 겪고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본인을 위해서도 부대를 위해서도 계급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군대에서는 편합니다. 내무생활은 회사와는 달라서 24시간 내내 분대원들과 붙어있게 됩니다. 한번 사람 때문에 신경쓰기 시작하면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합니다. 처음부터 그럴 일을 안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이로울..지도?

 또 저는 축구를 잘 못하거든요. 고등학교 때에도 수행평가 때문에 한 서너번, 대학교 1학년 때 학회별 대항전에서 한 번 한 것 외에는 아예 축구 자체를 해 본 역사가 없습니다. 마침 제 맞선임(본인의 바로 위 선임, 실질적으로 가장 오래 군생활을 같이 하게 됩니다)이 축구를 정말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이었는지라 더 비교가 됐을지도 모르겠네요. 축구를 좋아하는 부대에서 축구를 잘하면 가치가 급상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음; 뭐 좋게 생각하면 축구를 못하니까 처음 빼고는 굳이 같이 축구하자고 권하지 않더라구요.

 다만 구기와는 별개로 기초체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가급적 입대 3달 전부터 달리기 정도는 꾸준히 하시길 권합니다. 부대에서는 매일 구보(=뜀걸음=조깅)를 뛰는데, 거기서 선임들 못 따라가면 그때부터는 피곤해집니다. 제 경우 동기 중 한 명이 정말 몸이 비대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이등병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구보에서는 거의 매번 낙오하고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도 당연히 잘 못했기 때문에 그 친구는 일과시간 외에도 엄한 선임이 갈구면서 강제로 운동했었습니다.

 이등병때 제일 열심히 쓰는 것이 통칭 소나기. 소중한 나의 병영일기, 예전에는 수양록이라고 불렀던 모양입니다만, 일종의 일기입니다. 사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훈련소 때 가장 열심히 썼던 것 같기도 한데, 자대 배치받고 나서는 주 단위로밖에 안 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훈련소에만 1일 반페이지나 할애하는 희한한 구조라.. 훈련소때 괜히 딴 마음 먹지 말라는 의도일지도? 저희 부대는 내용 검열은 안하고 썼는지 유무만 매주 확인했는데, 다른 부대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훈련소 때 쓰던 소나기

이등병 때 자대에서 썼던 소나기

 익히 알려져 있지만 목소리 크기도 뭐.. 마찬가지로 저는 목소리가 큰 편이 아니라서, 나름 크게 낸다고는 했는데 원래 목소리가 큰 편은 못되서 선임들이 보기에는 그닥 만족스럽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나중에 선임이 되고 나서 보니 목소리 크기는 중요하지만 사실 크기보다 더 중요한건 얼마나 정확하고 절도있게 말하는지 여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제가 그랬다는건 아니고..

 훈련 때 얼마나 적극적으로 임하는지도 선임들의 평가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자대배치 받고 3주 후에 유격훈련을 받았었는데, 재밌게 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서 그럭저럭 다 넘어갔었습니다. 물론 PT체조는.. 음..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 아무튼 그 외에 유격에서 외줄타기 같은건 힘든게 문제가 아니라 아픈걸 참는게 문제인데, 아무튼 유격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위에서 말한 제 동기는 체격 때문에 유격훈련에서 너무 많이 낙오했고, 실제로 그게 본인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선임들은 낙오하는 모습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제 동기를 더 욕하게 되고, 저는 운 좋게도 반사효과로 욕먹는 것을 조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암기력은 좋을수록 당연히 좋지만, 필수는 아닙니다. 요즘 강제암기는 부조리로 징계사유가 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입하면 선임들의 관등성명(이름 + 계급)과 몇 월 군번인지, 부대 구호, 10대군가, 부대가, 기타 자기 주특기나 업무 관련 지식은 적어도 본인의 후임이 오기 전까지는 외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후임이 올 때까지도 숙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물어보러 다니면 후임에게 무능한 선임으로 보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후임이 오기 전이라면 꼭 단기간내에 외우지 못하더라도, 수첩에 적어서 평소에 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면 크게 나무라는 선임은 없을 겁니다.

 사실 위의 요소들은 죄다 부차적인 것들이고 이등병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성실함과 사교성입니다. 다른 것들을 다 못해도 이 두 개만 있으면 결국 선임들도 인간인지라 미워할 수가 없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둘 중 더 중요한 것은 성실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일화를 하나 들어보자면..

 제 군생활 후반에 드디어 1년 이상 기다려온 부사수(자신과 같은 보직(≒업무)을 담당하는 자신의 바로 아래 후임. 반대개념은 사수)가 신병으로 들어왔었습니다. 당시에 분대장이라 면담을 하는데 처음 저한테 물어본답시고 하는 말이 "여기서 사람 때리면 어떻게 됩니까?"였습니다. 아주 걱정이 되는 첫 발언이었습니다. 또 저희는 신병때 자기소개서 같이 15줄 분량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화장실에 붙여놓았었는데, 이 친구한테 제출받은 것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맞는 철자법이 없고, 뭘 얘기하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아주 실망이 컸습니다. 부사수가 일을 못하면 전역할때까지 착취를 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친구는 빈말로도 머리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노력하는 자세 하나는 확실했습니다. 군가를 잘 못 외우고 주특기 숙달속도도 느렸지만, 쉬는 시간에도 숙지하려고 수첩 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좋아졌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면회와 휴가, PX, 싸지방 등 복지..랄까 기본권이랄까에 대해 적어보기로 하겠습니다.

1년에 한번씩 오는 엽서 보는 것도 은근히 꿀잼입니다. 쓰는 애들이야 강제로 하는거니까 불쌍하긴 하지만..
답장 못해줘서 미안합니다



덧글

  • 2017/07/19 22:50 # 답글

    전진전진 용팔아 최멸행

    글을 읽다보니 갑작스레 떠오르네요. 군생활동안 은근히 군가 외우는것에 재미들려서 10대군가 외에도 부대가, 육군가, 푸른소나무 등 열댓개 정도의 군가를 2절 내지 전 소절 다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첫 예비군 훈련으로 학생야-비군을 갔는데,사백여명의 학우들 중 유이하게 옷깃에 계급장이 달려있었던지라 군가를 시키는데도 전우 2절을 동대장이 호령하더라구요. 그걸 또 혼자 앞구절을 불렀더니 동대장이 당황하던게 떠오릅니다. 핫하
  • 아슈라 2017/07/19 23:14 #

    랄님 오랜만이네요 ㅎㅎ
    저는 군가 벌써 거의 다 까먹었는데, 외우기도 1절만 외우고.. 의외의 참군인이신?

    저도 작년에 학생예비군 처음 갔을때 기억나네요 ㅋㅋ 로스쿨 사람들이랑 같이 뭉쳐서 가는데 거진 장교출신들이라 중위들이 부대지정해서 다니니까 학부생들이 엄청 신기하게 보더라구요.. 저는 병장인 것도 모자라 예비군 마크도 안달고 다니는데,

    그거랑 별론으로 요새 예비군 빡세지 않나요? 각개전투로 철조망 포복하는거 민방위 친구들한테 말하면 다들 거짓말하지 말라는 반응인데
  • 2017/07/26 19:10 #

    저는 마침 비도 왔었고, 학교예비군측에서 은근 원조가 많았는지 학생예비군이 아니라 학생야비군을 하고왔어요.

    3년 꼬박 채워서 K2만 쏘다가 M16 쏘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개머리판이 적응이 안되어서 힘으로 견착하고 쏴야했었습니다. 조정간 반자동 구령도 처음듣고는 좀 놀랐어요.

    사격은 솔직히 끔찍했습니다. 총기걸이부터 총까지 결속시킨건 뭐라 안하겠는데, 거리가 너무 짧아서 왼팔로 총기지지가 힘들었어요. 애매한 환경이 겹쳐서 예전처럼은 못쏘고, 가늠자가 좌우로 흔들리게 냅두다가 가운데 올때마다 쏘는식으로 해서(사실 영점사격장에서만 쓸 수 있는 야매죠.) 5발 5센티미터 내 원형으로 탄착군 형성시켜서 통과했네요.

    같은 과 동기가 조장이기도 하고 옆순번이라 표적지 봤는데, 3센티 이내에 다꽂았더라구요.

    특공연대 출신이기도 한데, 체구가 작아서 쏘는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즐거운 첫 야비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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