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마무리하며 본인과 세상 이야기

 한해를 마무리하며 끄적거리기. 올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한계까지 몰리고 내 밑이 어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군대에서 합격통지서 받을 때만해도 모든게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그게 절대 아니었다. 들어가고 나서부터가 진짜..

 내가 기질적으로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도 대체로 그런 것을 보면) 로스쿨 첫해는 (일부 사법시험 2차생 출신을 제외하면) 정말 영혼을 갈아넣는 작업이다. 3월에야 그냥저냥 와 신난다 이러면서 술먹고 놀면서 지내지만 점차 변호사시험의 실체를 알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그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공부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여러모로 부족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스트레스도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누적된다.

열람실 위층의 전경

 정점은 4월이었는데, 수업 도중에 온콜이라고 한명 찍어서 질문을 하는 시스템이 있다. 충실히 대답 못하면 감점. 그 과목이 화/목이었고 수요일은 민법 퀴즈시험이었다. 즉 화,수,목 연속으로 부담이 있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월요일 밤부터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면증을 사람들이 쉽게 말하곤 하는데, 진짜 불면증은 아예 잠에 들지 못하는거다. 마치 잠자는 방법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근데 또 누워는 있다. 어떻게든 자볼라고. 허나 잠은 오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멀쩡하고, 시계를 볼 때마다 '아 지금부터라도 자야 4시간은 자는데'부터 시작해서 결국 '한시간만 잤으면 좋겠다' 지경이 된다. 하지만 결국 아예 못자고 울것같은 심경으로 방을 나간다.

 이렇게 한숨도 자지 않은 상태로 11일을 지냈다. 11일동안 완전히 못자는게 말도 안되는 것처럼 들릴거라는건 아는데, 진짜로. 약국가서 수면유도제 먹어도 근육만 무기력해질뿐 잠은 절대로 안온다. 정신과가서 정식으로 수면제 처방 받아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법원이나 경찰에 지원할 때 정신과진료는 기록에 남는다는 얘기가 있어서 관뒀다.

 잠을 못자면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공부를 해도 한 것같지가 않다는것. 눈은 글자를 훑지만 머리에 입력되는 즉시 빠져나간다. 무기력하고 우울증에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수반되는거고, 뭣보다 그 다다음주가 바로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머리 상태가 저모양이니 정신적으로 더 몰리게 됐다.

 말은 안해도 로스쿨에 처음 올 때는 모두가 다 검찰이나 법원, 대형로펌에 가고 싶어하고, 그러려면 학점은 당연히 최상위권이어야 하는지라 첫학기의 경쟁은 정말 치열하다. 다들 공부하는 그 와중에 나는 책을 봐도 아무것도 이해가 안되고 외워지지도 않는 지경이 되니 정말 죽고 싶더라. 매일 밤 되면 또 자려고 노력은 한다 누워서. 잠에 도움된다는건 다 해봤다. 온수샤워, 따뜻한 우유마시기, 운동하기, 호흡법, 백색소음 등등.. 하지만 결국 밤새 단 한숨도 못자고 또 울 것 같은 심경으로 방을 나가는 것의 반복이다. 이 불면증은 중간고사 끝날 때까지 쭉 따라갔고, 시험 끝나고 난 다음날이 되서야 비로소 10시간 정도 몰아서 잘 수 있었다.

 어쨌든 시험이 끝나고 잠을 잤다는건 결국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다는거다. 허나 불면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질환에서 말하는 그 마음가짐은 말 그대로 질환이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쉬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질환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내 편협한 사고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중간고사를 저 모양으로 쳤으니 첫학기 성적은 바닥을 기게 될.. 거라고 낙담했는데 또 그건 아니더라. 아무래도 학부에서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절반이다보니 아무리 학부생활을 개판으로 했어도 법대 출신이라는 것 만으로 커버가 되는 부분이 첫 학기에는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당연히 최상위권에는 못 들었기 때문에 뭔가 마음을 조금 놓는 계기가 됐다. 스트레스와 부담감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망가졌으니 앞으로는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니 조금은 더 편해진 것 같다.

 뭐 그래도 기질이란 어디 가지 않는 법이라 어디까지나 '조금은' 더 편해진 것일 뿐, 불면증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해결이 안됐다. 여전히 시험 전날은 누워서 두세시간은 뒤척이는 것 같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니 머리가 나빠지는 것도 확연하게 느껴진다. 누워서 바로 자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1학기에 다 쓰고 버리기 아까워서 모아둔 펜들

 그렇게 지옥같은 첫 학기를 보내고 여름은 비교적 즐겁게 보낸 것 같다. 2011년에 사서 군대를 거쳐 나와 함께한 아이폰4를 교체한 것도 소소한 이벤트. 원래 전역하자마자 바꿀 예정이었는데, 6S가 기대에 못미쳐서 패스. 그렇다고 7을 사려니 내년이 아이폰 10주년이라 7은 과도기적 모델에 불과할거란 예측이 너무 강해서 또 애매. 그래서 이 기회에 안드로이드나 한번 써보자 하고 알아보다 마침 군대에서 후임이 극찬하던 소니 엑스페리아 신모델이 정발된다길래 엑스페리아 X 퍼포먼스로 갈아탔다.

처음 써보는 안드로이드 폰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폰 쓰던 사람은 계속 아이폰 쓰는게 맞는 것 같다. 써보니까 안드로이드는 뭔가 컴퓨터 같은 면이 있어서 자기 능력이 된다면 이것저것 꾸미는 것이 장점이긴 한데, ios를 너무 오래 써서 그런가 스마트폰 특유의 간결함과 딱 떨어지는 맛이 없다고 해야 하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결론은 쓸데없이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거. 그런 주제에 한번 느려지면 대책없이 느려져서 공장초기화해야하는데 ios의 설정초기화와 달리 완전 포맷개념이라 백업을 해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시 일일히 만져줘야 하는게 영 불편하다. 핸드폰 자체는 참 좋다. 빠릿빠릿하고 카메라도 괜찮고 방수방진도 탁월해서 욕조에 넣고 논다. 지문인식버튼의 위치가 특히 신의 한수. 허나 안드로이드는 나랑 안 맞는 듯 싶다. 아이폰8이 나오면 바로 다시 돌아갈 듯.

 여름 한창 더울 때 아오모리 가서 지내다 온 것도 참 좋았다. 아오모리는 외국인 관광객보다 일본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 외국인을 위한 편의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 홋카이도만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지간한 료칸에는 영어로 된 간판은 커녕 영어 자체가 안통한다. 일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들은 숙소를 예약해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사진으로 표현이 부족한

 하지만 아오모리는 넘나 좋은 곳.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정말 좋은 곳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라고 늘 주변에 권한다. 아오모리 시티는 그냥 그런 일본 지방 도시지만, 외곽으로 빠지면 자연이 아주.. 특히 토와다 호수는 힐링을 목적으로 한다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숨겨진 명소. 날씨까지 감안하면 유럽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남은 방학은 민법 강의 듣고, 2학기는 1학기보다는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개같이 힘들었다. 특히 기말고사 끝난 그 다음 주에 전범위 선택형 시험을 별도로 응시하고 이 성적을 학점에 반영시켜버리는 만행이 학교 커리큘럼에 추가되서 실질적인 시험기간은 2주. 성적은 1학기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다만 뭔가 상처뿐인 승리라는 느낌, 마지막까지 영혼이 갈려나간 2016년이었다. 2017년은 좀 더 여유를 찾는 한 해가 되기를.

심심할때 가끔씩 하는 워해머 체스 레지사이드. 은근히 꿀잼

덧글

  • 자유로운 2016/12/29 23:06 # 답글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아슈라 2016/12/30 20:56 #

    감사합니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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