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군대이야기 2: 훈련소 본인과 세상 이야기


=== II. 36사단 신병교육대 ===
 훈련소(=신병교육대)는 육군 병사로의 기본 소양을 배우는 곳인데, 대충 추려보면 경례 군가 걷는 방법 등의 제식훈련을 시작으로 사격, 병기본(구급법, 포복, 수류탄, 화생방 등 병으로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기술들) 같은 것들을 5주간 배우는 곳입니다. 5주의 기본훈련을 마친 후 주특기를 더 배울 필요가 있는 보직(대표적으로 운전병)은 보직에 따라 몇 주 더 추가로 훈련을 받은 후 군생활 약 20개월을 보낼 자대로 배치받게 됩니다.


 여하튼 저는 원주에 있는 36사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좀 보편화되있긴 합니다만, 당시로는 공중전화와 PX를 이용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파격적인 훈련소였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언제나 되는 것은 아니고 전화는 최대 2번, PX는 3주, 4주차 주말에 한번씩 총 2번씩 이렇게 사용했는데, 제가 전역할때쯤 들어온 36사단 출신 후임들 얘기 들어보니 요즘은 전화도 훨씬 더 자주하고 PX도 좀 더 자유롭게 이용하곤 했던 모양입니다. TV는 딱 한번 봤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뉴스를 한 30분 정도?

 생활은 소대단위로 하고(저희 소대는 35명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침번은 이틀에 한번 섰습니다.

 저는 훈련소 생활이 군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보람있는 기간이었습니다. 실전적인 기술들을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기도 했고, 가장 통제가 심한 기간이긴 했지만, 역으로 가장 군인다운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통제가 군인다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찌보면 참 슬프고 아이러니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재미가 은근히 쏠쏠했습니다. 거의 군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군인답게 제식걸음을 했던 기간이기도 하구요.

 이 기간에는 보충대에서 배급받은 전투복을 입지 않고 다 낡아빠지고 냄새나는 중고 구형 전투복을 임시로 지급해서 입게 합니다. 아무래도 훈련중에 새 전투복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텐데, 재미있는 것은 가슴팍에 명찰 비슷한 것을 달게 하는데 한주가 지날 때마다 계급장처럼 한칸씩 채워가서 마지막 주에는 병장마냥 4칸을 채우게 됩니다.

명찰대신 이걸 가슴에 붙이고 다니는데, 왼쪽 배터리는 1주마다 한칸씩 칠합니다.

 훈련소가 가장 힘든 사람들은 아무래도 흡연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달 강제금연은 역시 힘들겠죠.

 제가 훈련소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역시 화생방훈련이었습니다. 방독면을 벗는 순간 참지옥을 경험하고 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긴 3분이었을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방독면을 안 벗고 정화통만 교체하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저도 자대가서 유격훈련 갔을 때 그렇게 했고, 후임들도 훈련소에서 방독면을 직접 벗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정화통 교체만 하는거라면 사실 정상적인 폐활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주 잠깐만 숨을 참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괴롭진 않아요. 사실 화생방훈련 자체가 방독면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확인하고, 정화통 교체법을 숙지했는지에 주 의의가 있는만큼 방독면 벗는건 하등 쓸모없는 짓입니다. 실전에서 화생방상황 터졌을 때 방독면 벗으면 죽거나 중상입니다. 그냥 기왕 가스 터뜨린거 너네도 한번 괴로움을 체험해봐라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에서 방독면을 벗는 절차가 들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없어져서 참 다행입니다. 화생방 훈련 이후 정말 3주간 기침으로 고생했습니다.

 사격훈련은 글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탄을 쏴본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정도입니다. 특히나 훈련소에서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강압적인 분위기이기도 하고, 사격술을 제대로 숙지를 하지 못한 채로 사격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20발 중 12발 미만이면 불합격으로 재사격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성적이 나빴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동심원을 제대로 만들줄 몰라서 훈련소 사격은 엉망으로 했었는데 나중에 자대에서 익숙해진 후에는 방독면 쓰고 20발 다 맞추기도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훈련소에서의 사격은 첫 사격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별반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PX나 전화는 정말 훈련소에서 한두번 있을까말까 한 특별한 기회라 제껴두고, 훈련소 생활 가운데 일과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하면 역시 편지받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도 있지만 요즘은 해당 훈련소마다 카페가 있어서 가입 후 글을 남기면 행정병이 프린트해서 나눠줍니다. 보충대에서도 한번 하긴 했는데, 훈련소에서는 거의 격일마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편지를 전해주기 때문에, 하루 중 거의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여자친구한테 아주 감사해지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나 옆에서 입대한지 한달도 채 못기다리고 도망가는 여자들로 괴로워하는 전우들이 눈에 밟히는 판에..

 제일 기억에 남는 날은 자대배치를 받는 날 밤이었습니다. 36사단은 원주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제일 최전방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전방, 거기에 강원도는 강원도인지라 4월에도 눈이 오는 곳입니다. 산속에 있는 부대는 PX조차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 20개월간 어느 부대에서 생활하게 되는지가 병사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전날 조교들의 조치였는데 신발끈부터 시작해서 야상이나 우의에 달린 끈까지 모조리 회수해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대배치를 받고 난 후에 좌절하고 자살하는 병사가 생겨서 미리 예방조치로 전부 가져간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저희 소대 중 한명은 대관령으로 배치를 받고 난 후 3일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소대 중에 ㅂㅈㅇ이라고, 참 착하고 여린 애였는데, 아무리 봐도 군대에 와서는 안 되는 애였습니다. 중간에 PX에서 물건을 사고 따로 보관하지 못하게 했음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다들 알아서 꼬불쳐두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좀 움직임이 느려서 조교한테 걸렸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죄송하다고 하거나 기합 받으면 좀 받고 말 일인데, 애는 정말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면서 경끼를 일으키는게 정말 공포감에 질려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아무튼 나중에 보니 자대배치 받고 얼마 안되서 복무부적합 판정 받고 공익으로 빠진 모양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공익에 갔어야 할 친구였는데 정말 징병에 한해 병무행정이 얼마나 제 기능을 못하는지 알게 해 준 사례였습니다.

 훈련소였음에도 조교들의 폭언이나 구타, 부당한 기합은 일절 없었습니다. 제 또래 애들이 군대 갔을 때에 비하면 정말 가장 발전된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맞을만한 짓'을 해도 혼내는 경우는 있어도 씨발 수위의 욕이 날아오거나 때리는 경우는 전혀 없었으니 이 부분에 있어서 육군은 10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나아진 듯 합니다.

 또 생각나는건 소대별로 가족 중 고위공직자, 대기업 임원, 영관급 이상의 장교 등 소위 사회지도층이 있는지 따로 조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저희 소대에는 세명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안그래도 오늘 이런 조사의 목적과 관련해서 조금 불미스러운 뉴스가 뜬 듯도 합니다만..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게 실제로 자대배치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를 꼭 확인해보고 싶긴 했으나, 훈련소를 수료하면 서로 거의 연락을 안 하기 때문에 결국 알 수 없었습니다.

 무튼 이렇게 5주를 마치면 수료식과 더불어 반나절의 짧은 영외외출이 주어집니다. 입대를 하고 난 뒤 첫 출타입니다. 흡연자들은 한달 반만에 구경하는 담배일테고, 히어로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저는 원주 CGV에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봤었죠.. 그렇게 짧은 반나절이 지난 후에는 훈련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후 각자 배치받은 자대로 흩어지게 됩니다. 전역하고 다시 만나자는 말도 안되는 다짐들을 하면서..

애네들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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