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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군대이야기 3: 자대배치와 노란색 견장 본인과 세상 이야기

전편

 처음 자대에 갔던 때가 아마 군생활 중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남은 20개월을 보낼 곳이라는 설렘 반, 앞으로 같이 지낼 간부, 선임들에게 잘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반.


 === 3. 자대배치 ===
 처음 자대건물에 대해 받은 인상은 '뭐 이렇게 낡고 구려' 려나. 작은 2층짜리 건물, 눈대중으로 보아 지은지는 적어도 40년은 된 것 같고, 군데군데 금간 곳이 보일 정도로 허름함. 헬스장이라고 만들어놓은 곳은 다 쓰러져가는 비닐하우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최전방처럼 신형 막사나 침대형 생활관이 아니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건물에서 지내다 이거 무너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은 곳일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에.

 아무튼 짐을 풀기도 전에 인사과에서 보직을 받았습니다. 제 보직은 통신병. 인터넷 설치도 어려워하는 제가, 그것보다도 난 문과인데?란 생각도 들긴 했지만 (입대할 때 특기를 맞춰서 들어가는 경우가 아닌) 대부분의 징집병은 저처럼 해당 부대에 결원이 생긴 보직으로 자동편성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사실 저와 정말 정말 모든 면에서 맞지 않는 보직이었습니다. 보직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설명드리기로 하고,

 제가 지낸 생활관과 95% 똑같은 곳

 대부분의 침상형 생활관은 신형 막사가 아닌 이상 위 생활관과 대동소이한 모습일겁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면 정말 구리긴 한데, 건물에서 제가 많이 기대치를 낮췄기 때문인지 생활관 자체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TV가 집에 있는 것보다 더 좋아보였다는 것이 함정. 국민을 위하는 기업 LG에서 기부한 덕분에 2013년 말부터 육군 전 생활관에는 최신형 HD TV와 더불어 유플러스 다시보기가 제공됩니다. 덕분에 영화도 드라마도 예능도 다시보기 가능.

 제 신상은 제가 오기 전부터 이미 선임들에게 알려져 있던 모양이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인사과 행정병도 병사인지라 신병에 대한 정보가 생길 때마다 흘리고 다니거든요. 적어도 4살 이상 나이 차이가 났으니 신기할 법도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선임들이 신병한테 물어보는 누가 더 잘생겼냐에 대한 질문은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 다 잘생겨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이런 드립은 솔직히 묻는 사람들 더 맥빠지게 하는 대답입니다. 저런거 물어보는 선임들의 심리는 정말 궁금해서가 반, 장난치고 싶은게 반이거든요. 이런 말 그대로 사소한건 뒤끝이 없으니 그냥 떠오르는대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거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그걸로 트집잡을 정도로 속 좁은 선임이라면 이미 부대 내에서 악평이 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을겁니다.


=== 4. 노란 견장 ===
 전입신고와 총기수여식을 하면 정식으로 부대의 일원이 되고, 동시에 노란 견장을 받게 됩니다. 노란 견장은 엄격히 말하면 '관심 병사', 즉 이런 저런 이유(우울증, 가정사, 자살주의 등)로 관심을 요하는 병사가 차는 견장입니다. 눈에 아주 잘 띄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해당 병사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주란 의미에서 달게 됩니다.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전입신병도 관심병사로 일단 분류가 됩니다. 지금은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는데, 관심병사에도 등급이 있어서 A 등급은 큰 주의를 요하는 경우고, 전입신병같은 경우에는 C등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른쪽 병사처럼 노란 견장을 차고 있는 동안에는 혼내더라도 암묵적으로 크게 혼내지 않고, 아무래도 더 편의를 봐주는 편입니다. 기간 한정 쉴드템이라고도 하죠. 입대 후 100일이 지나거나, 일병으로 진급하면 뗍니다.


=== 5. 이등병 생활 I: 업무 ===
 저는 통신병 보직을 맡았지만 부대 훈련과 주특기 관련 훈련/평가를 제외한 평소에는 사실상 중대행정병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저는 타자는 비교적 빠른 편이었으나 그 외에는 흔한 워드자격증도 없었고, 고로 워드 프로세서를 다루는 능력도 일천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중대행정일을 시키는 것은 그리 적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육군으로 징집되어 가시는 분들이라면 꼭 알아두셔야 하는 것이, 육군 병사는 대부분 말 그대로 징집병으로 나쁘게 말하면 "끌려 온" 병사들입니다. 즉 이는 지원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적 자원에서 지원병에 비해 조금 열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똑똑하고 학력이 좋은 자원들은 장교나 공군 쪽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인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기만 해도 병사들 사이에서는 꽤나 높은 학력입니다. 저희 중대의 경우 완편부대가 아니기 때문에 정원이 약 28명이었는데, 입대 후 전역까지 생활한 50여명의 병사 가운데 인서울 4년제는 저를 제외하고 3명밖에 없었습니다. 아, 카이스트를 다니다 온 선임을 포함하면 4명. 어떻게 보면 10%니까 얼추 수능 등급상 비율이랑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사정이 그렇다보니 서울소재 대학만 다니다 와도 행정관련 일을 잘 할거란 기대를 받게 되기 때문에 관련보직을 위에서 '받게'될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허나 이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처음에야 학력으로 대우를 해 주더라도 그 기대에 빨리 부응하지 못하면 이래저래 더 혼나고 피곤해집니다. 사실 학력이란 것도 사회에서 취업할때나 의미가 있지, 군에서는 하등 무쓸모한 스펙인고로 결국에는 실력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오히려 일부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선임들은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있기 때문에, 학력이 높든 낮든 이등병때는 열심히 일해서 두루두루 인정받는 것 외에 왕도는 없습니다.

 그 외에 저는 법을 전공했기 때문에 징계 관련 업무를 위임받았습니다. 징계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으니 나중에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이등병시절의 내무생활부터 써보겠습니다.

2016년을 마무리하며 본인과 세상 이야기

 한해를 마무리하며 끄적거리기. 올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한계까지 몰리고 내 밑이 어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군대에서 합격통지서 받을 때만해도 모든게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그게 절대 아니었다. 들어가고 나서부터가 진짜..

 내가 기질적으로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도 대체로 그런 것을 보면) 로스쿨 첫해는 (일부 사법시험 2차생 출신을 제외하면) 정말 영혼을 갈아넣는 작업이다. 3월에야 그냥저냥 와 신난다 이러면서 술먹고 놀면서 지내지만 점차 변호사시험의 실체를 알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그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공부하는지를 알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여러모로 부족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스트레스도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누적된다.

열람실 위층의 전경

 정점은 4월이었는데, 수업 도중에 온콜이라고 한명 찍어서 질문을 하는 시스템이 있다. 충실히 대답 못하면 감점. 그 과목이 화/목이었고 수요일은 민법 퀴즈시험이었다. 즉 화,수,목 연속으로 부담이 있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월요일 밤부터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면증을 사람들이 쉽게 말하곤 하는데, 진짜 불면증은 아예 잠에 들지 못하는거다. 마치 잠자는 방법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근데 또 누워는 있다. 어떻게든 자볼라고. 허나 잠은 오지 않기 때문에 정신은 멀쩡하고, 시계를 볼 때마다 '아 지금부터라도 자야 4시간은 자는데'부터 시작해서 결국 '한시간만 잤으면 좋겠다' 지경이 된다. 하지만 결국 아예 못자고 울것같은 심경으로 방을 나간다.

 이렇게 한숨도 자지 않은 상태로 11일을 지냈다. 11일동안 완전히 못자는게 말도 안되는 것처럼 들릴거라는건 아는데, 진짜로. 약국가서 수면유도제 먹어도 근육만 무기력해질뿐 잠은 절대로 안온다. 정신과가서 정식으로 수면제 처방 받아보려고 했는데, 나중에 법원이나 경찰에 지원할 때 정신과진료는 기록에 남는다는 얘기가 있어서 관뒀다.

 잠을 못자면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공부를 해도 한 것같지가 않다는것. 눈은 글자를 훑지만 머리에 입력되는 즉시 빠져나간다. 무기력하고 우울증에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수반되는거고, 뭣보다 그 다다음주가 바로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머리 상태가 저모양이니 정신적으로 더 몰리게 됐다.

 말은 안해도 로스쿨에 처음 올 때는 모두가 다 검찰이나 법원, 대형로펌에 가고 싶어하고, 그러려면 학점은 당연히 최상위권이어야 하는지라 첫학기의 경쟁은 정말 치열하다. 다들 공부하는 그 와중에 나는 책을 봐도 아무것도 이해가 안되고 외워지지도 않는 지경이 되니 정말 죽고 싶더라. 매일 밤 되면 또 자려고 노력은 한다 누워서. 잠에 도움된다는건 다 해봤다. 온수샤워, 따뜻한 우유마시기, 운동하기, 호흡법, 백색소음 등등.. 하지만 결국 밤새 단 한숨도 못자고 또 울 것 같은 심경으로 방을 나가는 것의 반복이다. 이 불면증은 중간고사 끝날 때까지 쭉 따라갔고, 시험 끝나고 난 다음날이 되서야 비로소 10시간 정도 몰아서 잘 수 있었다.

 어쨌든 시험이 끝나고 잠을 잤다는건 결국 내 마음가짐의 문제였다는거다. 허나 불면증을 비롯한 정신과적 질환에서 말하는 그 마음가짐은 말 그대로 질환이기 때문에 의지만으로 쉬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질환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내 편협한 사고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중간고사를 저 모양으로 쳤으니 첫학기 성적은 바닥을 기게 될.. 거라고 낙담했는데 또 그건 아니더라. 아무래도 학부에서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절반이다보니 아무리 학부생활을 개판으로 했어도 법대 출신이라는 것 만으로 커버가 되는 부분이 첫 학기에는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당연히 최상위권에는 못 들었기 때문에 뭔가 마음을 조금 놓는 계기가 됐다. 스트레스와 부담감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망가졌으니 앞으로는 너무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갖게 되니 조금은 더 편해진 것 같다.

 뭐 그래도 기질이란 어디 가지 않는 법이라 어디까지나 '조금은' 더 편해진 것일 뿐, 불면증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해결이 안됐다. 여전히 시험 전날은 누워서 두세시간은 뒤척이는 것 같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니 머리가 나빠지는 것도 확연하게 느껴진다. 누워서 바로 자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1학기에 다 쓰고 버리기 아까워서 모아둔 펜들

 그렇게 지옥같은 첫 학기를 보내고 여름은 비교적 즐겁게 보낸 것 같다. 2011년에 사서 군대를 거쳐 나와 함께한 아이폰4를 교체한 것도 소소한 이벤트. 원래 전역하자마자 바꿀 예정이었는데, 6S가 기대에 못미쳐서 패스. 그렇다고 7을 사려니 내년이 아이폰 10주년이라 7은 과도기적 모델에 불과할거란 예측이 너무 강해서 또 애매. 그래서 이 기회에 안드로이드나 한번 써보자 하고 알아보다 마침 군대에서 후임이 극찬하던 소니 엑스페리아 신모델이 정발된다길래 엑스페리아 X 퍼포먼스로 갈아탔다.

처음 써보는 안드로이드 폰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폰 쓰던 사람은 계속 아이폰 쓰는게 맞는 것 같다. 써보니까 안드로이드는 뭔가 컴퓨터 같은 면이 있어서 자기 능력이 된다면 이것저것 꾸미는 것이 장점이긴 한데, ios를 너무 오래 써서 그런가 스마트폰 특유의 간결함과 딱 떨어지는 맛이 없다고 해야 하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결론은 쓸데없이 손이 너무 많이 간다는거. 그런 주제에 한번 느려지면 대책없이 느려져서 공장초기화해야하는데 ios의 설정초기화와 달리 완전 포맷개념이라 백업을 해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시 일일히 만져줘야 하는게 영 불편하다. 핸드폰 자체는 참 좋다. 빠릿빠릿하고 카메라도 괜찮고 방수방진도 탁월해서 욕조에 넣고 논다. 지문인식버튼의 위치가 특히 신의 한수. 허나 안드로이드는 나랑 안 맞는 듯 싶다. 아이폰8이 나오면 바로 다시 돌아갈 듯.

 여름 한창 더울 때 아오모리 가서 지내다 온 것도 참 좋았다. 아오모리는 외국인 관광객보다 일본인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 외국인을 위한 편의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 홋카이도만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지간한 료칸에는 영어로 된 간판은 커녕 영어 자체가 안통한다. 일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들은 숙소를 예약해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사진으로 표현이 부족한

 하지만 아오모리는 넘나 좋은 곳.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정말 좋은 곳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라고 늘 주변에 권한다. 아오모리 시티는 그냥 그런 일본 지방 도시지만, 외곽으로 빠지면 자연이 아주.. 특히 토와다 호수는 힐링을 목적으로 한다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숨겨진 명소. 날씨까지 감안하면 유럽보다 더 좋은 것 같다.

 남은 방학은 민법 강의 듣고, 2학기는 1학기보다는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개같이 힘들었다. 특히 기말고사 끝난 그 다음 주에 전범위 선택형 시험을 별도로 응시하고 이 성적을 학점에 반영시켜버리는 만행이 학교 커리큘럼에 추가되서 실질적인 시험기간은 2주. 성적은 1학기에 비해 많이 좋아지긴 했다만 뭔가 상처뿐인 승리라는 느낌, 마지막까지 영혼이 갈려나간 2016년이었다. 2017년은 좀 더 여유를 찾는 한 해가 되기를.

심심할때 가끔씩 하는 워해머 체스 레지사이드. 은근히 꿀잼

내 군대이야기 2: 훈련소 본인과 세상 이야기


=== II. 36사단 신병교육대 ===
 훈련소(=신병교육대)는 육군 병사로의 기본 소양을 배우는 곳인데, 대충 추려보면 경례 군가 걷는 방법 등의 제식훈련을 시작으로 사격, 병기본(구급법, 포복, 수류탄, 화생방 등 병으로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기술들) 같은 것들을 5주간 배우는 곳입니다. 5주의 기본훈련을 마친 후 주특기를 더 배울 필요가 있는 보직(대표적으로 운전병)은 보직에 따라 몇 주 더 추가로 훈련을 받은 후 군생활 약 20개월을 보낼 자대로 배치받게 됩니다.


 여하튼 저는 원주에 있는 36사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좀 보편화되있긴 합니다만, 당시로는 공중전화와 PX를 이용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파격적인 훈련소였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언제나 되는 것은 아니고 전화는 최대 2번, PX는 3주, 4주차 주말에 한번씩 총 2번씩 이렇게 사용했는데, 제가 전역할때쯤 들어온 36사단 출신 후임들 얘기 들어보니 요즘은 전화도 훨씬 더 자주하고 PX도 좀 더 자유롭게 이용하곤 했던 모양입니다. TV는 딱 한번 봤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뉴스를 한 30분 정도?

 생활은 소대단위로 하고(저희 소대는 35명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불침번은 이틀에 한번 섰습니다.

 저는 훈련소 생활이 군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보람있는 기간이었습니다. 실전적인 기술들을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기도 했고, 가장 통제가 심한 기간이긴 했지만, 역으로 가장 군인다운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통제가 군인다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찌보면 참 슬프고 아이러니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재미가 은근히 쏠쏠했습니다. 거의 군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군인답게 제식걸음을 했던 기간이기도 하구요.

 이 기간에는 보충대에서 배급받은 전투복을 입지 않고 다 낡아빠지고 냄새나는 중고 구형 전투복을 임시로 지급해서 입게 합니다. 아무래도 훈련중에 새 전투복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텐데, 재미있는 것은 가슴팍에 명찰 비슷한 것을 달게 하는데 한주가 지날 때마다 계급장처럼 한칸씩 채워가서 마지막 주에는 병장마냥 4칸을 채우게 됩니다.

명찰대신 이걸 가슴에 붙이고 다니는데, 왼쪽 배터리는 1주마다 한칸씩 칠합니다.

 훈련소가 가장 힘든 사람들은 아무래도 흡연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달 강제금연은 역시 힘들겠죠.

 제가 훈련소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역시 화생방훈련이었습니다. 방독면을 벗는 순간 참지옥을 경험하고 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긴 3분이었을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방독면을 안 벗고 정화통만 교체하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저도 자대가서 유격훈련 갔을 때 그렇게 했고, 후임들도 훈련소에서 방독면을 직접 벗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정화통 교체만 하는거라면 사실 정상적인 폐활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주 잠깐만 숨을 참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괴롭진 않아요. 사실 화생방훈련 자체가 방독면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확인하고, 정화통 교체법을 숙지했는지에 주 의의가 있는만큼 방독면 벗는건 하등 쓸모없는 짓입니다. 실전에서 화생방상황 터졌을 때 방독면 벗으면 죽거나 중상입니다. 그냥 기왕 가스 터뜨린거 너네도 한번 괴로움을 체험해봐라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에서 방독면을 벗는 절차가 들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없어져서 참 다행입니다. 화생방 훈련 이후 정말 3주간 기침으로 고생했습니다.

 사격훈련은 글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탄을 쏴본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 정도입니다. 특히나 훈련소에서는 상대적으로 조금 더 강압적인 분위기이기도 하고, 사격술을 제대로 숙지를 하지 못한 채로 사격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20발 중 12발 미만이면 불합격으로 재사격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성적이 나빴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당장 저만 해도 동심원을 제대로 만들줄 몰라서 훈련소 사격은 엉망으로 했었는데 나중에 자대에서 익숙해진 후에는 방독면 쓰고 20발 다 맞추기도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훈련소에서의 사격은 첫 사격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별반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PX나 전화는 정말 훈련소에서 한두번 있을까말까 한 특별한 기회라 제껴두고, 훈련소 생활 가운데 일과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하면 역시 편지받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도 있지만 요즘은 해당 훈련소마다 카페가 있어서 가입 후 글을 남기면 행정병이 프린트해서 나눠줍니다. 보충대에서도 한번 하긴 했는데, 훈련소에서는 거의 격일마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편지를 전해주기 때문에, 하루 중 거의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여자친구한테 아주 감사해지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나 옆에서 입대한지 한달도 채 못기다리고 도망가는 여자들로 괴로워하는 전우들이 눈에 밟히는 판에..

 제일 기억에 남는 날은 자대배치를 받는 날 밤이었습니다. 36사단은 원주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제일 최전방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전방, 거기에 강원도는 강원도인지라 4월에도 눈이 오는 곳입니다. 산속에 있는 부대는 PX조차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 20개월간 어느 부대에서 생활하게 되는지가 병사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전날 조교들의 조치였는데 신발끈부터 시작해서 야상이나 우의에 달린 끈까지 모조리 회수해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대배치를 받고 난 후에 좌절하고 자살하는 병사가 생겨서 미리 예방조치로 전부 가져간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저희 소대 중 한명은 대관령으로 배치를 받고 난 후 3일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소대 중에 ㅂㅈㅇ이라고, 참 착하고 여린 애였는데, 아무리 봐도 군대에 와서는 안 되는 애였습니다. 중간에 PX에서 물건을 사고 따로 보관하지 못하게 했음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다들 알아서 꼬불쳐두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좀 움직임이 느려서 조교한테 걸렸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죄송하다고 하거나 기합 받으면 좀 받고 말 일인데, 애는 정말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면서 경끼를 일으키는게 정말 공포감에 질려있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고, 아무튼 나중에 보니 자대배치 받고 얼마 안되서 복무부적합 판정 받고 공익으로 빠진 모양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공익에 갔어야 할 친구였는데 정말 징병에 한해 병무행정이 얼마나 제 기능을 못하는지 알게 해 준 사례였습니다.

 훈련소였음에도 조교들의 폭언이나 구타, 부당한 기합은 일절 없었습니다. 제 또래 애들이 군대 갔을 때에 비하면 정말 가장 발전된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맞을만한 짓'을 해도 혼내는 경우는 있어도 씨발 수위의 욕이 날아오거나 때리는 경우는 전혀 없었으니 이 부분에 있어서 육군은 10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나아진 듯 합니다.

 또 생각나는건 소대별로 가족 중 고위공직자, 대기업 임원, 영관급 이상의 장교 등 소위 사회지도층이 있는지 따로 조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저희 소대에는 세명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안그래도 오늘 이런 조사의 목적과 관련해서 조금 불미스러운 뉴스가 뜬 듯도 합니다만..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게 실제로 자대배치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를 꼭 확인해보고 싶긴 했으나, 저는 훈련소에 오기 전에 이미 102보충대에서 자대가 결정이 되어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소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든가 하여 제 자대를 결정할 권한이 없었던 상황이었는지라 실제로 어떤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무튼 이렇게 5주를 마치면 수료식과 더불어 반나절의 짧은 영외외출이 주어집니다. 입대를 하고 난 뒤 첫 출타입니다. 흡연자들은 한달 반만에 구경하는 담배일테고, 히어로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저는 원주 CGV에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봤었죠.. 그렇게 짧은 반나절이 지난 후에는 훈련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후 각자 배치받은 자대로 흩어지게 됩니다. 전역하고 다시 만나자는 말도 안되는 다짐들을 하면서..

애네들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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